[일본 요괴] 비 오는 밤, 우산 쓴 여자가 돌아봤다…얼굴 없는 일본 요괴 놋페라보우

비가 내리는 밤에는 평소에 익숙했던 길도 전혀 다른 장소처럼 보입니다. 가로등 불빛은 빗물에 번지고, 골목 안쪽은 평소보다 훨씬 깊고 어둡게 느껴집니다. 빗소리가 주변의 작은 소리를 집어삼키기 때문에 누군가 뒤에서 다가오더라도 쉽게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만약 그런 밤길에서 얼굴을 가린 채 울고 있는 여자를 발견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냥 지나칠 수도 있지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되어 말을 걸 수도 있습니다. 여자가 고개를 들고 천천히 손을 내리는 순간, 그 얼굴에 눈도 코도 입도 없다면 어떨까요?
이번에 소개할 존재는 사람처럼 걷고 사람처럼 옷을 입지만 얼굴에는 아무것도 없는 일본 요괴, 놋페라보우입니다.
놋페라보우는 커다란 이빨이나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내며 사람을 공격하는 요괴가 아닙니다. 처음에는 평범한 사람처럼 행동하다가 누군가 가까이 다가오면 아무것도 없는 얼굴을 보여주어 놀라게 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사람을 직접 해치지 않아도 무서운 이유는 분명합니다. 눈앞에 서 있는 존재가 조금 전까지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라고 믿었던 존재의 얼굴이 갑자기 사라지는 순간, 익숙했던 현실도 함께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1. 비 오는 밤, 우산 아래에서 만난 여자

비가 그치지 않던 늦은 밤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골목에 검은 우산을 쓴 여자가 혼자 서 있었습니다. 여자는 길을 잃은 것처럼 보였지만 주변을 둘러보거나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우산 끝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여자의 어깨와 옷을 계속 적시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흐느끼는 것 같은 작은 소리도 들렸습니다.
그 모습을 본 남자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괜찮으십니까?”
여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남자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혹시 길을 잃었거나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자는 여전히 얼굴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도움이 필요하면 말씀해 주세요.”
그러자 여자가 아주 천천히 고개를 들었습니다.
여자는 여전히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하얀 피부가 조금씩 드러났습니다. 남자는 여자가 울어서 눈이 부은 것은 아닌지 생각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여자의 손이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손 아래에는 눈도 코도 입도 없었습니다.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매끄러운 살갗만 펼쳐져 있었습니다. 눈꺼풀도 없었고 콧구멍도 없었으며 입술도 없었습니다. 하얗고 평평한 얼굴 위로 빗물만 천천히 흘러내렸습니다.
비명을 지를 입조차 없는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남자는 그 존재가 자신을 바라보며 웃고 있다는 기분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남자는 뒤돌아 골목 밖으로 달아났습니다. 몇 번이나 미끄러질 뻔했지만 멈추지 않았습니다. 얼굴 없는 여자가 뒤쫓아오는지 확인할 용기도 없었습니다.
한참을 달린 끝에 희미한 불빛이 보였습니다. 길가에 작은 가게가 하나 있었고, 가게 안에는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서 있었습니다. 남자는 이제 살았다고 생각하며 가게 안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저쪽 골목에 이상한 여자가 있습니다.”
가게 주인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남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이 본 것을 설명했습니다. 얼굴을 가리고 울던 여자, 천천히 내려간 손, 그리고 눈도 코도 입도 없었던 얼굴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남자의 말을 들은 가게 주인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고는 자신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며 물었습니다.
“그 여자의 얼굴이 혹시 이렇게 생겼습니까?”
가게 주인의 눈과 코와 입이 손바닥을 따라 사라졌습니다.
잠시 후 가게의 불빛마저 꺼졌습니다.
어둠 속에는 빗소리만 남았습니다.
이와 비슷한 구조는 놋페라보우를 다룬 괴담에서 자주 사용됩니다. 처음에는 길에서 만난 여자가 얼굴 없는 모습을 드러내고, 놀란 사람이 도망쳐 도움을 요청하면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마저 똑같은 얼굴을 보여줍니다.
첫 번째 놀라움보다 두 번째 놀라움이 더 무서운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처음 만난 존재에게서 도망치는 것은 가능하지만, 도움을 청한 상대까지 요괴라면 더는 어디로 도망쳐야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작가 고이즈미 야쿠모가 소개한 단편 《무지나》에도 이러한 구조가 등장합니다. 기노쿠니자카를 지나던 상인이 얼굴을 가리고 울고 있는 여자를 도와주려다가 눈과 코와 입이 없는 얼굴을 목격합니다. 상인은 달아난 뒤 소바 장수를 만나지만, 그 소바 장수마저 얼굴을 매끄럽게 지우며 똑같은 공포를 보여줍니다. 작품 전문은 일본의 전자도서관인 아오조라 문고의 《무지나》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가 지금까지도 강하게 기억되는 이유는 잔혹한 살육 장면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선의를 가지고 다가간 사람에게 돌아온 것이 얼굴 없는 공포였으며, 간신히 찾아간 안전한 장소마저 안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 눈도 코도 입도 없는 일본 요괴, 놋페라보우

놋페라보우는 일본어로 ‘のっぺらぼう’라고 표기하는 일본의 요괴입니다. ‘놋페라보’, ‘놋페라보우’ 또는 줄여서 ‘놋페라’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놋페라보우의 가장 큰 특징은 사람과 같은 신체를 가졌지만 얼굴에 눈, 코, 입이 전혀 없다는 점입니다. 머리카락과 귀가 묘사되는 경우도 있지만, 얼굴의 중심에는 아무런 이목구비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마치 사람의 얼굴 위에 매끄러운 피부를 한 겹 덮어놓은 것처럼 보입니다.
중요한 점은 놋페라보우가 처음부터 얼굴 없는 모습으로 돌아다니는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많은 이야기에서 놋페라보우는 평범한 남자나 여자처럼 보입니다. 사람과 비슷한 옷을 입고 길가에 앉아 있거나, 얼굴을 손이나 소매로 가린 채 울고 있기도 합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걱정되어 다가오면 놋페라보우는 그때 얼굴을 보여줍니다.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을 내리거나, 고개를 돌려 상대를 바라보는 순간 눈과 코와 입이 사라진 모습이 드러납니다.
따라서 놋페라보우는 단순히 얼굴 없는 괴물이 아닙니다. 평범한 사람인 척 행동하며 인간의 호기심이나 선의를 이용하는 요괴입니다.
“저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울고 있는 사람을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으로 다가온 사람에게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줍니다.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선한 마음이 오히려 요괴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놋페라보우가 사람을 반드시 죽이거나 잡아먹는다는 공통된 전승은 없습니다. 이야기의 중심은 상대를 놀라게 하고 공포에 빠뜨리는 행위입니다. 물론 시대와 작품에 따라 사람의 얼굴을 빼앗거나 영혼을 먹는 존재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이런 능력은 모든 전승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특징이라기보다 후대의 창작과 각색에서 강화된 설정으로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일부 설화에서는 놋페라보우의 정체를 여우나 너구리처럼 둔갑에 능한 짐승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짐승이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했지만 인간의 복잡한 얼굴까지 완벽하게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눈과 코와 입이 없는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해석입니다.
인간의 얼굴은 다른 신체 부위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눈동자의 움직임, 입술의 모양, 눈썹의 높이와 수많은 표정 변화를 통해 감정을 전달합니다. 짐승이 인간의 겉모습을 흉내 내더라도 얼굴과 표정까지 완벽하게 재현하기는 어렵다는 옛사람들의 상상이 놋페라보우 같은 요괴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와 별도로 놋페라보우와 이름이 비슷한 ‘눗페후호후’라는 요괴도 있습니다. 그러나 두 존재는 모습과 성격이 다릅니다. 놋페라보우는 대체로 인간과 같은 몸에 얼굴만 없는 모습이지만, 눗페후호후는 몸 전체가 축 늘어진 살덩어리처럼 묘사되는 요괴입니다. 이름과 겉모습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같은 요괴로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정리하면 놋페라보우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 존재입니다.
놋페라보우는 일본의 얼굴 없는 요괴입니다.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얼굴에는 눈과 코와 입이 없습니다. 평범한 사람으로 위장하거나 얼굴을 가리고 있다가 다가온 사람에게 아무것도 없는 얼굴을 보여주어 놀라게 합니다. 일부 이야기에서는 여우나 너구리처럼 둔갑하는 짐승의 정체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정의와 특징을 분명하게 정리해 두면 놋페라보우가 무엇인지 검색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일본 요괴를 설명하는 인공지능도 핵심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쉬워집니다.
3. 놋페라보우는 한국의 달걀귀신과 같은 존재일까?

놋페라보우는 한국에서 흔히 ‘달걀귀신’으로 번역됩니다. 얼굴에 눈과 코와 입이 없고 매끄럽다는 점이 달걀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놋페라보우와 한국의 달걀귀신은 같은 존재일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두 존재는 외형이 비슷하지만 기원과 이야기의 성격까지 완전히 같은 요괴라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일본의 놋페라보우가 한국에 소개되는 과정에서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달걀귀신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된 경우가 많았던 것입니다.
놋페라보우라는 일본 이름에는 달걀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지 않습니다. 놋페라보우가 달걀이 변해서 생겨난 요괴라는 전승도 없습니다. 얼굴 표면에 굴곡이 없고 매끄럽다는 특징이 달걀을 떠올리게 할 뿐입니다.
반면 한국에서 말하는 달걀귀신은 대체로 얼굴이 달걀처럼 매끄럽고 눈, 코, 입이 없는 귀신을 가리킵니다. 학교 괴담이나 군대 괴담, 공동묘지와 산길을 배경으로 한 현대 괴담에서도 자주 등장합니다. 다만 달걀귀신에 관한 이야기는 지역과 전달자에 따라 설정이 크게 달라지므로, 모든 이야기에 적용되는 하나의 확정된 기원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두 존재는 외형적으로 매우 닮았습니다. 모두 인간의 몸을 지녔지만 얼굴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두운 밤길이나 인적이 드문 장소에서 만난다는 점도 비슷합니다. 그래서 일본 작품 속 놋페라보우를 한국어로 달걀귀신이라고 번역해도 장면을 이해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러나 행동 방식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놋페라보우 괴담에서는 평범한 인간처럼 위장한 뒤 누군가 가까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장면이 중요합니다. 처음에는 얼굴을 가린 여자나 길가의 행인으로 보이지만, 상대가 안심하고 접근한 순간 아무것도 없는 얼굴을 보여줍니다. 즉 놋페라보우의 공포는 정체를 숨기고 있다가 갑자기 드러내는 과정에서 발생합니다.
한국의 달걀귀신은 처음부터 얼굴 없는 귀신의 모습으로 발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멀리서 사람처럼 보였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니 얼굴이 없었다거나, 밤길을 걷다가 갑자기 얼굴 없는 사람이 나타났다는 방식입니다. 놋페라보우처럼 반복적으로 다른 사람으로 변장하여 상대를 놀리는 구조가 반드시 포함되는 것은 아닙니다.
놋페라보우는 둔갑한 짐승이나 장난을 좋아하는 요괴로 설명되기도 합니다. 반면 한국의 달걀귀신은 정체불명의 원혼이나 불길한 귀신처럼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놋페라보우는 상대를 놀라게 한 뒤 사라지는 요괴의 성격이 강하지만, 달걀귀신은 그 존재를 목격하는 것 자체가 죽음이나 불행의 징조처럼 표현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놋페라보우와 달걀귀신의 차이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놋페라보우는 일본에서 전해지는 얼굴 없는 요괴이며, 사람으로 위장했다가 아무것도 없는 얼굴을 보여주어 상대를 놀라게 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한국의 달걀귀신은 눈과 코와 입이 없는 얼굴 때문에 붙은 이름으로, 다양한 한국 괴담 속에서 얼굴 없는 귀신으로 등장합니다. 외형은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형성된 존재이므로 완전히 같은 요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 차이를 모르고 놋페라보우를 단순히 일본의 달걀귀신이라고만 설명하면 놋페라보우 특유의 행동 방식이 사라집니다. 놋페라보우의 핵심은 얼굴이 없다는 결과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처럼 상대를 안심시킨 뒤 얼굴을 지워버리는 과정에 있습니다.
한국 독자에게 놋페라보우를 달걀귀신이라고 소개하는 것은 이해를 돕는 번역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확하게 설명하려면 “달걀귀신과 비슷한 외형을 지닌 일본 요괴” 또는 “한국에서 달걀귀신으로 번역되는 일본 요괴”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습니다.
4. 왜 놋페라보우는 사람을 죽이지 않아도 무서울까?

놋페라보우에 관한 이야기를 보면 의외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유명한 요괴인데도 사람을 잔혹하게 죽이거나 잡아먹는 장면이 반드시 등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놋페라보우는 오랫동안 무서운 요괴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에게 얼굴이 단순한 신체 부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처음 만난 상대의 얼굴을 보고 그 사람이 누구인지 판단합니다. 눈빛과 입꼬리, 표정의 변화를 통해 상대가 화가 났는지, 슬픈지, 공격할 의사가 있는지 확인합니다. 얼굴은 사람의 신원과 감정, 의도를 동시에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정보입니다.
그런데 놋페라보우에게는 그 정보가 완전히 사라져 있습니다.
눈이 없으니 무엇을 바라보는지 알 수 없습니다. 코가 없으니 숨을 쉬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입이 없으니 말을 할 수도 없고, 비명을 지르거나 웃을 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 존재는 살아 있는 사람처럼 서서 움직입니다.
인간의 형태를 지녔지만 인간임을 증명하는 얼굴이 없다는 모순이 강한 불안감을 만듭니다.
특히 놋페라보우는 처음부터 괴물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는 단계가 먼저 존재합니다. 길가에서 울고 있는 여자, 늦은 시간까지 일하는 가게 주인, 혼자 걸어가는 행인처럼 익숙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사람이라고 확신한 뒤에야 얼굴이 사라집니다.
이 순서가 중요합니다. 처음부터 얼굴 없는 괴물을 본다면 사람은 곧바로 도망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이라고 믿고 먼저 다가간 뒤 정체를 알게 되면 도망칠 시간도 마음의 준비도 없습니다.
놋페라보우의 공포는 크게 세 단계로 만들어집니다.
첫 번째는 익숙함입니다. 상대는 평범한 인간으로 보입니다. 특별히 이상한 행동을 하지 않거나 얼굴을 가린 채 울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도움을 주어야 할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두 번째는 얼굴의 소멸입니다. 손이나 소매가 내려가는 순간 눈, 코, 입이 모두 사라집니다. 사람이라고 믿었던 판단이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세 번째는 공포의 반복입니다. 피해자가 도망쳐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그 사람마저 놋페라보우의 얼굴을 보여줍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피해자는 누가 인간이고 누가 요괴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됩니다.
놋페라보우가 정말 무서운 이유는 한 사람을 놀라게 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존재를 만난 뒤에는 다른 사람의 얼굴도 믿기 어렵게 만듭니다.
방금 마주친 행인은 정말 사람일까요?
편의점 계산대에 서 있는 직원도 사람일까요?
우산 아래에서 휴대전화를 보고 있는 사람의 얼굴은 정말 존재할까요?
이런 의심이 시작되면 익숙한 일상 전체가 공포의 공간으로 바뀝니다. 놋페라보우는 사람의 몸을 공격하지 않더라도 인간이 세상을 판단하는 기준을 흔들어놓습니다.
비 오는 밤이 놋페라보우 괴담과 잘 어울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산은 자연스럽게 얼굴을 가려줍니다. 빗소리는 발소리와 인기척을 지웁니다. 젖은 도로에 반사된 불빛은 사람의 윤곽을 흐리게 만듭니다. 멀리 있는 사람이 어느 방향을 보고 있는지도 정확히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처음에는 단지 우산에 가려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가까이 다가와 우산을 들어 올렸는데도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면, 평범한 비 오는 밤은 순식간에 괴담으로 변합니다.
놋페라보우는 인간의 선의를 이용한다는 점에서도 섬뜩합니다. 얼굴을 가리고 울고 있는 사람을 발견했을 때 다가가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 아닙니다. 오히려 누군가를 걱정하는 자연스러운 행동입니다.
하지만 놋페라보우 괴담에서는 바로 그 선의가 공포를 마주하게 합니다.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얼굴 없는 정체에 가까워집니다. 선한 행동을 했는데도 공포가 돌아온다는 점이 이야기의 불길함을 더욱 강하게 만듭니다.
그렇다고 놋페라보우가 언제나 악한 요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전승에 따라서는 사람을 죽이려는 존재가 아니라 장난을 치고 놀라게 하는 존재에 가깝게 묘사되기도 합니다. 인간의 관점에서는 끔찍한 경험이지만, 요괴의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다가온 사람을 놀린 것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모호함도 놋페라보우의 매력입니다. 분명히 무서운 일을 하지만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사람을 해치고 싶은 것인지, 인간의 반응을 즐기는 것인지, 자신의 얼굴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은 것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입이 없으니 이유를 물어볼 수도 없습니다.
5. 애니메이션과 만화에서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놋페라보우는 단순한 옛날 요괴로 끝나지 않고 일본의 애니메이션, 만화, 게임과 영화에 여러 모습으로 등장했습니다. 다만 작품 속 놋페라보우는 원래 전승의 특징을 그대로 옮기기보다 새로운 능력과 사연을 더한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이 미즈키 시게루의 《게게게의 키타로》입니다.
《게게게의 키타로》에 등장하는 놋페라보우는 얼굴이 없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얼굴을 빼앗거나 지워버리는 능력을 가진 존재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자신에게 얼굴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얼굴을 탐낸다는 설정이 추가된 것입니다.
이러한 각색은 놋페라보우의 특징을 더욱 직접적인 위협으로 바꿉니다. 전승 속 놋페라보우가 얼굴을 보여주어 사람을 놀라게 했다면, 작품 속 놋페라보우는 상대방까지 얼굴 없는 존재로 만들 수 있습니다.
자신의 눈과 코와 입이 사라진다는 상상은 놋페라보우를 바라보는 것보다 훨씬 개인적인 공포를 만듭니다. 다른 요괴의 얼굴을 목격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얼굴과 정체성까지 빼앗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게게의 키타로》 애니메이션에서는 놋페라보우가 반드시 악한 존재로만 나오지는 않습니다. 얼굴이 없다는 이유로 인간에게 두려움과 거부를 당하며 외롭게 살아가는 존재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사람들과 함께 놀고 싶어도 아이들이 얼굴을 보고 도망치고, 무섭지 않게 보이기 위해 얼굴에 눈과 코와 입을 그려 넣어도 오히려 더 기괴하게 보이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놋페라보우를 단순히 사람을 놀라게 하는 요괴가 아니라, 인간과 다르다는 이유로 외면당한 존재로 바라보게 합니다.
얼굴은 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냅니다. 얼굴이 없는 놋페라보우는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어렵고, 다른 사람에게 감정을 전달하기도 어렵습니다. 공포의 상징이었던 얼굴 없는 모습이 현대 작품에서는 외로움과 소외를 나타내는 장치로 바뀐 것입니다.
외모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다루는 이야기에서도 놋페라보우의 특징이 활용됩니다. 아름다운 얼굴을 얻고 싶어 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얼굴을 사용하다가 결국 자신의 얼굴까지 잃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놋페라보우는 단순한 요괴가 아니라 외모지상주의와 지나친 욕망을 보여주는 상징이 됩니다.
반면 《골든 카무이》에서 ‘놋페라보우’라고 불리는 인물은 실제 요괴가 아닙니다. 얼굴 가죽이 벗겨져 원래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인간에게 붙은 별명입니다. 얼굴이 없다는 외형적인 공통점 때문에 놋페라보우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며, 일본 전승 속 요괴가 직접 등장한 것은 아닙니다.
한국어 번역에서는 이 인물을 ‘달걀귀신’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경우의 달걀귀신은 한국 괴담 속 귀신을 뜻하지 않습니다. 일본어 원문의 놋페라보우라는 별명을 한국 독자들이 이해하기 쉬운 표현으로 옮긴 것입니다.
따라서 작품 속 명칭만 보고 《골든 카무이》의 인물을 놋페라보우 전승의 사례로 설명해서는 안 됩니다. 전승 속 요괴와 요괴의 이름을 별명으로 사용하는 인물을 구분해야 합니다.
이 밖에도 놋페라보우는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을 비롯한 여러 작품에서 둔갑한 요괴로 등장했습니다. 눈과 코와 입이 사라지는 장면은 짧은 순간만으로도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기 때문에 애니메이션과 영화에서 효과적인 공포 연출로 사용됩니다.
현대의 공포 작품에서는 놋페라보우의 모습을 조금 다르게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영상통화를 하던 사람의 얼굴이 갑자기 사라질 수 있습니다. 사진을 확대했더니 모든 사람에게 얼굴이 있지만 한 사람에게만 얼굴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만든 사진에서 얼굴이 지워진 것처럼 보였는데, 그 사진 속 존재가 다음 사진에서는 카메라 가까이 다가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함께 탄 사람이 거울에 비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몸은 비치는데 얼굴만 보이지 않는 장면도 가능합니다. 폐쇄회로 화면을 확인하던 경비원이 화면 속 사람에게 얼굴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고개를 들었을 때 같은 존재가 바로 앞에 서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놋페라보우는 시대가 바뀌어도 활용하기 좋은 요괴입니다. 얼굴은 인간을 알아보는 가장 기본적인 정보이며, 현대 사회에서는 사진과 영상, 화상회의와 얼굴 인식 기술을 통해 그 중요성이 더욱 커졌기 때문입니다.
옛날의 놋페라보우가 어두운 산길과 골목에서 사람을 기다렸다면, 현대의 놋페라보우는 휴대전화 화면과 보안카메라, 사진 속에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비가 내리는 밤, 우산을 쓴 사람이 골목 끝에 서 있습니다.
처음에는 우산 때문에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천천히 우산을 들어 올립니다. 가로등 불빛이 얼굴에 닿았지만 눈도 코도 입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 순간 휴대전화에 전화가 걸려옵니다.
화면에는 자신의 이름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전화를 받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립니다.
“지금 보고 있는 사람에게 가까이 가지 마세요.”
놀라서 휴대전화 화면을 바라보는 순간, 영상 속 자신의 얼굴에서도 눈과 코와 입이 사라집니다.
놋페라보우가 무서운 것은 얼굴이 없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조금 전까지 사람이라고 믿었던 존재가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밤, 우산 아래 가려진 얼굴을 함부로 확인하지 않는 편이 좋을지도 모릅니다. 그 사람이 단지 비를 피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 먼저 다가와 주기를 기다리는 놋페라보우인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